세상은 인간을 불가항력으로 단련시킨다. 그러나 불가항력에 순응하는 것은 포기에 가깝다. 진정한 인간의 길은 불가항력 속에서도 대항하는 힘을 찾는 것이며, 이것이 인간이 나아갈 유일한 전진이다.
흥미로운 역설은 여기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극복은 다른 이에게 새로운 불가항력이 된다. 자연의 불가항력보다 쉬워 보이는 인간의 불가항력을 넘어서려는 이들은 얄궂은 운명을 짊어진다. 자신의 최선이 더 나은 누군가를 밟는 것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벨탑의 진의
성경의 바벨탑 이야기는 단순한 처벌의 서사가 아니다. 바벨탑은 인류 단합의 상징이자 지혜의 탑이었다. 그것이 하늘에 닿지 못한 이유는 탑이 높아질수록 드러나는 것이 개인의 한계와 차이였기 때문이다. 언어의 분열은 이 차이의 은유다. 깊이 탐구할수록 각자가 보는 세계의 단면이 달라지고, 그 정교함과 복잡함은 단일한 해석을 거부한다.
개별성을 통한 보편성
그렇다면 새로운 바벨탑은 어떻게 쌓을 것인가? 답은 역설적이다. 각자가 자신만의 진리를 찾아 끝없이 복잡하고 정교해져야 한다. 이것이 모두가 화합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각자가 세상의 불가항력에서 배우고 그것을 닮아갈 때, 우리는 인식 너머에서 만날 수 있다. 감각은 개성을 만들지만, 인식 너머에만 진실이 있다. 그곳에 도달하는 길은 총체성이다. 모든 것이 하나의 진실에 부합할 때, 그것도 '나의 모든 것'이 아닌 '모두의 모든 것'일 때, 우리는 인식을 초월한다.
복잡성을 품는 삶
세상을 닮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원칙의 깊이와 상황 이해의 넓이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자연법칙이라는 불변의 토대와 만변하는 사건들의 유동성을 모두 품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인생으로는 한없이 불가능할 정도로 방대하지만, 그 방대함을 해나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이 과정에서 만나는 고통과 좌절도 성장의 일부다.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극복하여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고, 극복할 수 없는 것은 도움을 받아 회복의 기반으로 삼는다. 중요한 것은 극복하려는 마음이며, 이것이 성장의 속도를 좌우한다.
과정으로서의 완성
세상은 지독히도 잔인하게 설계되어 있다. 너무나 복잡하고 정교해서 인간은 그 일부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때로 그 일부가 서로를 향한 칼날이 된다. 그러나 각자가 자신의 방식으로 이 복잡성을 체화하고 세상을 닮아갈 때,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
새로운 바벨탑은 획일화된 언어로 쌓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고유한 복잡성이 세상의 복잡성과 공명할 때, 분열이 아닌 다양성을 통한 통합이 일어난다. 개별적 완성을 통한 전체의 실현, 이것이 인간이 나아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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